당시 장자권은 유산상속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장자는 유산상속에 있어 두 배를 받았습니다. 이를테면 두 형제가 있는데, 유산 중에 동생이 1,000만원을 받았다면, 형은 2,000만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동생 야곱이 장자권을 샀다는 것은 결국 형 에서가 받을 유산에 대한 상속권을 샀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형제지간에 장자권을 사고 파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동생 야곱이 형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사게 되는 정황은 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형 에서가 겨우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장자권을 팔 때는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습니다. 장자권의 값어치가 1,000만원이라면 그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어떤 형태로든 받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겨우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두 형제의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이삭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부족장입니다. 대단한 거부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얘기하면 대형백화점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거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형백화점 1개가 야곱이 받을 몫이 될 수 있다면, 에서는 대형백화점 2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죽 한 그릇에 대형백화점 2개에 해당하는 유산을 포기한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에 대해 본문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죽을 끓인 사건은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닙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집이라면 에서는 어머니에게 음식을 달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사냥꾼이 아니었습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막에 거주한다는 것은 그가 양치는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목동들은 물과 목초지를 찾기 위해 양떼를 몰고 넓은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양떼를 특정지역에서 먹이기 위해 일정한 기간 장막을 치고 그 안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그런 진영에서 몇몇 목동들을 감독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그 목동들을 만났고 그 목동들을 통해서 동생 야곱이 어느 장막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죽을 쑤고 있는 야곱에게 와서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고 요청한 것입니다.
29절에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라는 말씀은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하다가 지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에서는 배가 심히 고픈 상태였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프고 지쳐 있었기 때문에 먹을 것만 보였습니다. 배불리 먹고 한 숨 푹 자고 싶었습니다. 당장 급한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장 배고프고 피곤하다는 것 때문에 막대한 유산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명분은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장자의 명분이 유산상속과 관련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가 하면 하나님 자녀라는 명분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사건을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원래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명분입니다. 우리는 이 명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명분이 하나님나라를 상속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당장 배고프고 피곤한 일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그러면 당장 배고픈 일이 눈에 보이고, 당장 어려운 일만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그럴 때 마다 우리는 눈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도 배고프고 피곤한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역경을 통해, 이 세상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당장의 역경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역경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을 더욱 붙들어야 합니다.
야곱이 바로왕 앞에 섰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47장9절을 보면,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바로왕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표현하기를 ‘험악한 세월’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에게 ‘험악한 세월’ 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되기 어려웠던 사람입니다.
만일 나의 인생이 험악한 세월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연단을 받는 사람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에서가 만일 유산을 오늘이나 내일, 적어도 조만간에 받을 일이라면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산을 받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고, 배 고픈 것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너무나 쉽게 장자의 명분을 팔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몸을 덧입고 하나님나라에 사는 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의 어려움이 크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보다 현실의 문제가 더 크게 보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을 소홀히 여길 수 있습니다.
어떤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아니라도 고쳐질 수만 있다면 점쟁이라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이 하나님 자녀라는 명분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부자가 되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 자녀라는 명분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자녀라는 명분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권리 증서를 의미합니다. 집 안에 여러 가지 종류의 통장이 있고, 여러 가지 종류의 권리증서가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죽는 날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 가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나의 것이 아닙니다. 영원까지 나의 것이 되는 유일한 권리증서는 하나님 자녀라는 명분 뿐 입니다.
'구약성경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30장, 야곱의 가족과 라헬의 마지막 포옹 (0) | 2022.07.18 |
---|---|
창세기 28장, 야곱의 사닥다리 (0) | 2022.07.18 |
창세기 21장, 웃게 하시는 하나님 (0) | 2022.07.17 |
창세기 13장, 선택 (0) | 2022.07.17 |
창세기 4장, 더욱 난폭한 세상 (0) | 2022.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