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마가복음

마가복음 9장, 내가 믿나이다

영구한도성 2022. 8. 6. 16:02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14 ¶ And when he came to his disciples, he saw a great multitude about them, and the scribes questioning with them.
15 And straightway all the people, when they beheld him, were greatly amazed, and running to him saluted him.
16 And he asked the scribes, What question ye with them?
17 And one of the multitude answered and said, Master, I have brought unto thee my son, which hath a dumb spirit;
18 And wheresoever he taketh him, he teareth him: and he foameth, and gnasheth with his teeth, and pineth away: and I spake to thy disciples that they should cast him out; and they could not.
19 He answereth him, and saith, O faithless generation, how long shall I be with you? how long shall I suffer you? bring him unto me.
20 And they brought him unto him: and when he saw him, straightway the spirit tare him; and he fell on the ground, and wallowed foaming.
21 And he asked his father, How long is it ago since this came unto him? And he said, Of a child.
22 And ofttimes it hath cast him into the fire, and into the waters, to destroy him: but if thou canst do any thing, have compassion on us, and help us.
23 Jesus said unto him, If thou canst believe, all things are possible to him that believeth.
24 And straightway the father of the child cried out, and said with tears, Lord, I believe; help thou mine unbelief.
25 When Jesus saw that the people came running together, he rebuked the foul spirit, saying unto him, Thou dumb and deaf spirit, I charge thee, come out of him, and enter no more into him.
26 And the spirit cried, and rent him sore, and came out of him: and he was as one dead; insomuch that many said, He is dead.
27 But Jesus took him by the hand, and lifted him up; and he arose.
28 And when he was come into the house, his disciples asked him privately, Why could not we cast him out?
29 And he said unto them, This kind can come forth by nothing, but by prayer and fasting.
 

14 이에 그들이 弟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書記官들이 그들과 더불어 辯論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問安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辯論하느냐
17 무리 中의 하나가 對答하되 先生님 말 못하게 鬼神 들린 내 아들을 先生님께 데려왔나이다
18 鬼神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先生님의 弟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能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對答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世代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鬼神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甚히 痙攣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鬼神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者에게는 能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鬼神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鬼神아 내가 네게 命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鬼神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甚히 痙攣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弟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能히 그 鬼神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祈禱 外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種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장, 내가 믿나이다

 

 

 

본문 말씀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 요청하였지만, 제자들은 능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한탄조 섞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요청하였을 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애원(哀願)합니다.

 

‘소리를 지르다’ 고 할 때, 헬라어 원어에서는 ‘크라조’ 라고 합니다. ‘크라조’ 라고 하는 것은 마치 야생동물의 울음소리처럼 미친 듯이 울부짖는 소리를 ‘크라조’ 라고 합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미친 듯이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는 귀신들린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믿음이 없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힘든 순간이 이런 순간입니다. 상황은 절박하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탄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크라조’ 라고 하는 것은 믿음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본적인 자세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절박해서, 아니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인해 한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절박한 상황 앞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자신의 신세에 대해 한탄할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절박한 상황 앞에서,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해 한탄하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믿음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가진 믿음이 불확실하며 쓰러지기 쉽고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확실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의심에 휩싸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믿음의 상태이고 실체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자만해서도 안 되고, 믿음이 연약한 것 같아 낙심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부르짖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지만, 완전한 믿음으로 나아올 때만 은혜를 베푸시고, 완전한 믿음으로 나아올 때만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믿음의 힘과 확신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크기나 지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달리 말해서, 연약해서 의심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더 큰 믿음은 연약해서 의심하는 순간에도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구원’ 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할 때, 구원이 마치 나의 믿음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평생 내 믿음이 강건하고 좋을 것 같고, 확신이 넘치기를 원하지만, 일평생 그 믿음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 없이 약해지고, 때로는 불신에 빠지며, 인간적인 생각을 하며, 육신의 소욕을 쫓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약함과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다시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한 다음에 심부름 값은 얼마이고, 집을 지킨 값은 얼마이고, 무엇은 얼마이고 계산하여 그 청구서를 아버지에게 가져갔습니다. 이 일들에 대한 대가로 아버지로 부터 돈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다 보고서 그 돈을 지불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가르치기 위해서 아들에게 이러한 청구서를 적어서 아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네 어머니가 너를 가졌을 적에 열 달 동안 고생한 값이 얼마이고, 너를 해산했을 때에 병원에 지불했던 값이 얼마이고, 또 학교에 보내는데 든 돈, 거기에다 하루치 밥값은 얼마, 옷값은 얼마 등을 적어 주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그 어린 아이는 그것을 도저히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크신 은총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태에서 지으신 것이 은총이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 은총이고, 학교에 다니고, 하루치 받을 먹고, 옷을 입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많은 은총들은 우리가 믿음이 있어서 기도해서 받은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형편을 살피시고 그냥 주신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과신하거나 우리의 믿음이 약한 것으로 인해 낙심하기 보다는,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는 나의 형편까지 아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는 부르짖음 속에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비록 연약하지만, 비록 믿음이 없지만, 포기하고 돌아서기보다, 하나님께 응답을 간구하며 하나님께 힘들게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믿음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응답을 간구하며,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외치는 이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외치는 것이 가장 진실한 믿음입니다.

 

나의 믿음의 상태보다 항상 앞서고 있는 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믿음이 담대하고 강할 때 뿐 아니라, 나의 믿음이 바닥을 드러내서 내 영혼이 어두운 밤에 처했을 때에도 우리를 지탱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는 것은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 하나의 숙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싸움을 싸우듯이 우리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바닥을 드러낼 때,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 할 때, 믿음이 없어서 좌절과 낙망에 빠질 때,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열매가 전혀 없는 듯 보일 때도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보이지 않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열매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 삶의 변화가 필요한데, 그대로 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주변 상황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고, 나를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믿음의 싸움을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성경 속에 믿음의 증인들이 바로 그러한 싸움을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믿음이 연약해 졌을 때,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15:5) 말씀하시면서 위로하시기도 하고, 표징을 보여주시기도 했지 않습니까?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그러한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표징에도 불구하고, 급한 마음에 종의 자식인 이스마엘을 먼저 낳게 되었습니다. (창16:16) 이러한 영적인 실수를 범한 후에,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100세에 비로소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것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는 약속을 처음 받은 후, 25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로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신 것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긴 침묵 끝에, 25년 만에 자기 아들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영적인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그가 만난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인내” 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외쳐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확신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종착역에서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믿음의 인내를 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이 담대하고 강할 때 뿐 아니라, 나의 믿음이 바닥을 드러내서 내 영혼이 어두운 밤에 처했을 때에도 우리를 지탱해 주고 계심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하는 가운데, 몇 번의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힘든 시기에 한 번은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아주 깜깜한 터널(tunnel)을 걷고 있었는데, 그 터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주 긴 터널이었습니다. 그런데 터널 왼쪽에 조그마한 창문이 나 있었는데, 비록 조그마한 창문이었지만, 그 쪽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터널 바닥은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물은 수정같이 맑은 물이었고, 그 물은 터널 끝까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걷다가 보니 터널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왼쪽에 조그마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비록 지금의 상황이 힘들고 낙담이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의 삶의 숨통을 열어놓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터널 끝까지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제 믿음이 변질되어서는 안 되고, 순수함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이렇게 순수한 믿음을 지키고 오늘 하루 믿음의 삶을 살다가 보면, 그 어두운 터널은 다 지나게 되고, 그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