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복음
누가복음 2장, 복음
우편물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기준으로 할 때,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불특정 다수가 받는 우편물입니다. 이마트 쇼핑센터에서 같은 내용의 홍보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냈다면 그 우편물을 받은 사람은 뜯어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홍보물인 것을 알고 있고, 내용이 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특정인이 받는 우편물입니다. 특정인이 받는 우편물은 일단 우편물을 꼭 그 수신자가 받아야 합니다. 우편물의 내용이 그 수신자와만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 친구가 저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면 그 편지는 저만 읽으라고 보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읽으라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이 특정인이 받는 우편물입니다.
그런데 특정인이 받는 우편물도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쁜 소식이 담겨 있는 우편물이 있고, 또 하나는 슬픈 소식이 담겨 있는 우편물이 있습니다. 회사에 입사하는데 최종 합격 통지서가 나에게 우편물로 발송되었다면 그 우편물은 나에게 기쁜 소식이 됩니다. 그러나 불합격 통지서가 우편물로 발송되었다면 그 우편물은 나에게 슬픈 소식이 됩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불특정 다수가 받는 메시지가 아니라 몇 명의 특정인이 받는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그 메시지는 기쁜 소식이며, 그 소식을 천사를 보내 전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누구에게 보내셨습니까?
그 지역에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성전과 회당을 중심으로 한 종교 활동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목자들은 이러한 종교 활동에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양 떼를 지키고 먹이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은 밤낮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낮에 양 떼를 먹였습니다. 따뜻한 계절이 오면 조금이라도 시원한 저녁에 양 떼를 먹였습니다.
8절에,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천사가 나타난 이때는 따뜻한 계절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신앙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목자들에게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탄생에 대한 소식을 가장 먼저 받아 보아야 할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성경학자들이어야 합니다. 과연 그가 메시야인가를 분석하고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는 메시야 탄생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천사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신앙공동체에서 소외되어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를 보냈고, 그들에게 메시야 탄생 소식을 전했습니다.
당시 양 떼를 지키고 먹이는 목자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신분이 비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고, 근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메시야 탄생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들을 만한 자격이 있었던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이나 제사장들이나 성경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적 권력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고, 성경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자들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메시야 탄생 소식을 천사들로부터 들을 만한 자격이 있었던 사람들은 당시 양 떼를 먹이고 지키고 있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당시 양 떼를 지키고 먹이고 있던 목자들은 비록 신앙공동체에서는 소외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현재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분이 비천하였지만, 높은 사람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내가 낸데.”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삶 속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당시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을 대단히 요란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으로 살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그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며,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는 목자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다면 이 세상은 지금 보다 평화로울 것입니다.
목자들처럼 현재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겠습니까? 목자들처럼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고 소신 있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겠습니까? 목자들처럼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싸움을 하고, 전쟁을 하겠습니까? 목자들처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부담을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일을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위대한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위대한 전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학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노벨상을 받을 만큼 위대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한 전도자, 그러한 종교개혁자, 그러한 지도자, 그러한 학자, 그러한 사람을 만들어낸 하나님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영광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시대 위대한 사람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의 삶 속에 경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오히려 비천한 신분에 있었던 목자들을 찾아 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말 보다는 위대한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큰일을 하라는 말 보다는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 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저 마다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구원의 기쁨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탄절을 기점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시 구원의 기쁨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 지역 목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일생에 다시없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밤중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군 천사를 만나는 경험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곧 복음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라.’ 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천사는 목자들에게 이 사실을 확인하라고 말합니다.
12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표적은 헬라어로 세메이온( shmei'on )이라고 합니다. 세메이온은 신호, 표시, 징후, 기사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표시입니다.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징후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하나님의 이적이며 하나님의 기사입니다.
어떤 신호이며, 어떤 표시이며, 어떤 징후이며, 어떤 이적이며 어떤 기사입니까? 그것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구원의 주, 메시야 라는 사실입니다.
‘자인 심프슨 박사’ 라는 사람에게 어느 날 기자들이 "당신의 일생 중 최대의 발견이 무엇이었습니까?" 고 물었습니다. 이때 심프슨 박사는 "그것은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시라는 것, 이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숙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시라는 것을 아는 것은 이 숙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숙제가 풀립니까?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시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괴수와 같은 내가 구원을 받습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괴수와 같은 내가 구원 받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며칠 전에 시내 도로를 지나가다가 성탄절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역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그림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탄의 주인공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탄의 주인공은 빨간 옷을 입고 선물을 가득 실은 채, 눈썰매를 타고 씽씽 달리는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입니다.
참 슬픈 현실이 아닙니까?
성탄의 주인공은 눈썰매 타고 이런 저런 잡다한 선물을 주는 할아버지가 아닙니다. 성탄의 주인공은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괴수와 같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입니다. 온 세상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목자들에게 이 선물이 세상에 왔음을 천사를 통해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그 메시지를 듣고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가 목자들에게 전달 된 후, 천군 천사의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그찬송이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구세주를 보낸 사실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구세주를 보낸 사실이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됩니다. 다시 말해 구세주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는 가교(架橋)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늘의 하나님과 이 땅의 인간이 갈라 서 있었는데, 구세주께서 오심으로 다시 이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시 이어지게 됩니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구세주의 탄생하심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모든 피조세계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 땅에 구세주를 보내셨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없다면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없다면 각박한 세상에서 나의 마음은 계속 쪼그라들게 됩니다.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없다면 모든 영적인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회복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