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웃게 하시는 하나님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行하셨으므로
사람들은 웃기를 원합니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잠시라도 마음껏 웃어보기를 원합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있더라도, 한바탕 웃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사라지는 것 같고 다시 한 번 해보면 뭔가 될 것도 같은 용기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험하고 슬픈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얼굴을 우거지상을 하고 살 수도 있는데, 때로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배가 아플 정도로 웃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 신나서 웃는 웃음은 우리에게 주는 위로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보다는 우리는 의미가 있는 웃음. 깊이가 있는 웃음, 참된 웃음을 웃어야 합니다. 참된 웃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웃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라에게 그런 웃음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25년 전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는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는 이 한 가지 약속의 말씀만을 붙들고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민족도 좋고 다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현실은 아브라함에게는 단 한 명의 자식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사라는 갱년기를 맞아 생리가 중단되었고 여자로서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창세기 18장 10절을 보면, “내년 이 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사라가 문 밖에서 엿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을 다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라가 문 밖에서 엿듣고 속으로 피식 웃은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사라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라의 뱃속에 새 생명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아들을 낳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에 하나님의 사자가 명한대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삭이란 곧 ‘웃음’이란 뜻입니다.
6,7절을 보면, 사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나님은 전혀 불가능한 중에 사라를 잉태시킴으로 웃게 하셨습니다. 이 웃음은 단순한 웃음이 아닙니다. 인생의 아픔과 상처가 치료되는 웃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말씀을 이루시는 것을 보고 과연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체험하는 웃음입니다.
사라는 자식이 없을 때 남편에게 후처를 주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하였습니다. 사라에게 있어 이스마엘은 기쁨이 아들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을 볼 때 마다 슬픔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비로소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되면서 웃게 됩니다. 이 웃음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한 웃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찍이 아들을 주시지 않고, 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을 다 상실할 때 까지 기다렸다가 아들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붙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이루어진 다는 것을 아들 이삭의 출생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들이 믿음도 자라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름대로 점점 열국의 아비가 되어 갔고, 사라도 그 믿음처럼 열국의 어미가 되어 갔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일은 그 문제가 해결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나는 것이 훨씬 더 기쁜 일입니다.
세상에 이런 저런 기쁨을 주는 일들이 있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궁극적인 기쁨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은 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웃을 수가 있습니다. 이 웃음은 영적인 웃음이며, 이 웃음은 이 세상의 모든 피로와 힘든 것을 한 번에 사라지게 만드는 웃음입니다. 이 웃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웃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