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0장, 소망을 굳게 잡으라 feat.에클레시아
히브리서 10장, 소망을 굳게 잡으라 feat.에클레시아
교회를 그리스 아테네 말로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것은 호출을 받고 모인 ‘모임’ 을 의미합니다. 체육선생님이 학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호루라기를 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각자 자기 활동을 하다가도 이 호루라기 소리를 듣으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이와 같이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서 혹은 하나님의 사자의 나팔소리에 따라서 모여든 ‘모임’ 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부름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마태복음 4장18절과 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사건이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부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곧 바로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이 부르시자 곧 바로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들을 수 있는 귀를 누가 주셨습니까?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1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것이 에클레시아입니다. 에클레시아에 관하여 마태복음 4장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만유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해변을 다니시다가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던 어부들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부르심에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목적입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말씀에 따르면, 에클레시아의 성격을 병사를 모집한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병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병사의 특징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입니다.
병사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군대 질서에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만일 상관의 명령을 이탈을 하게 되면 처벌받습니다.
병사로서의 임무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우선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우선시 되는 것이 병사로서의 임무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향에 가봐야 하는데, 자기가 소속된 부대에서 휴가를 주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에클레시아 곧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이 이와 같이 군대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상관은 누구입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까? 주님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면서 전세계 교회가 깜짝 놀랐습니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의 성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신학자들이 실망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수적으로는 성장했는데,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자체보다 개인적인 축복을 더욱 강조하는 한국교회는 샤머니즘과 큰 차이가 없다는 혹평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이 모이는가 보다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믿고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 보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나라만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고 참으로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순종해 가는 에클레시아의 한 사람이라는 믿음의 정체성이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의 내용입니다.
또한 에클레시아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본문 19절과 20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에클에시아는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람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특별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께 특별히 속하는 사건이 에클레시아입니다.
왜 특별합니까?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신분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분입니까? 의인이라는 신분입니다. 천국에 누가 들어갑니까? 용서받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의인만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옷을 입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특별히 속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영적인 신분이 바뀔 수가 없습니다.
내가 에클레이시아에 속한 교인이라면 이렇게 영적인 신분이 바뀐 사람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서 25절을 보십시요.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합니다.
“미쁘시니” 라는 것은 “신실하시니”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따라 온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을 너무 믿게 되면 실망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게 보이던 사람도 나중에 나쁘게 보일 수 있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한계성입니다. 그러나 주님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거짓말 하지 않으시고, 속이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는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주님 안에서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하고, 내일도 주님 안에서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오늘 나를 실망시키고, 힘들게 하는 여러 사건과 세력들에 좌절하지 말고 여전히 우리는 주님 안에서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에클레시아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입니다. 우리가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고 서로 격려하는 것이 에클레시아입니다. 자기 살기 바쁘고, 자기 공부하기에만 바쁜 것은 에클레시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부름을 받은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고 말씀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에클레시아는 지금의 사회변화에 완전히 역행합니다. 이미 대학교에는 인터넷 수업이나 인터넷 시험이 있어서 학교에 가지 않고도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직장들이 과거 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작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합니다. 재택근무도 많이 늘었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같이 한 밥상에서 이야기하면서 먹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정도는 온 가족이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끼 식사라도 온 가족이 함께 하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에클레시아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접 사람 얼굴을 보아야 하고, 그 사람과 마주 앉아 떡을 떼는 것이 에클레시아입니다. 종말이 올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종말이 올수록 우리는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주님께 영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에클레시아 곧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나의 구원을 주님 안에서 더 확인하게 되고, 주님의 부르심을 더욱 알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