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26편1절-6절, 포로 귀환의 회복과 기쁨
시편 126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시입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 꾸는 것 같았도다.” 라고 노래합니다. 시인은 막상 조국해방을 맞이하고 보니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치 ‘꿈 꾸는 것 같았도다.’ 라고 그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까지 약 50년을 ‘바벨론 포로시대’ 라고 부릅니다.(기원전 586-538). 포로생활이 10년 20년이 아니라 거의 반세기가 다 되어 가면 희망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희망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국의 해방이 현실로 나타나면 믿기 어려울 만큼 감동적인 것이 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재난과 시련을 겪듯이 개인도 재난과 시련을 겪습니다. 바벨론 포로시대의 꿈이 민족의 해방이듯이, 개인이 재난과 시련을 겪을 때 꿈은 그 재난과 시련이 끝나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의 회복을 꿈꾸고, 가정이 붕괴된 사람은 가정의 재건을 꿈꿉니다. 고통과 슬픔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즐거움과 기쁨을 꿈꿉니다.
그런데 이 고통이 해결되지 않고 많은 세월이 지나게 되면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희망을 갖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의 고통이 극적으로 해결되면 믿기 어려울 만큼 감동적인 것이 됩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이유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1절 상반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인은 조국해방이라는 그 꿈이 우연히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노래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는 삶의 고난과 시련은 누가 해결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잃어버린 건강을 누가 회복시킵니까? 하나님이 회복시키십니다. 망가진 삶을 누가 회복시킵니까? 하나님이 회복시키십니다. 무너진 가정을 누가 세우십니까?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낙심과 절망의 마음을 기대와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히, 저절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시인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시인을 더 기쁘게 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2절을 보면,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라고 노래합니다.
2절에서도 반복하기를 조국해방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큰 일” 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로생활로 부터의 해방이 모든 사건의 종지부를 찍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왔을 때 조국의 땅덩어리는 버려진 채 있어서 너무나 황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눈앞에는 펼쳐져 있는 것은 무르익은 오곡백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앞에는 그 동안 돌보는 이가 없어 황무지로 변한 들판입니다. 이것을 두고 산너머 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장거리 경주의 결승점에 들어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뛰기를 시작한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박토가 된 농토를 다시 옥토로 가꾸는 고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한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녀 교육 다 시키고, 자녀들이 좋은 직장구하고, 결혼도 하면 이제 쉴 수 있을 것 같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돈이 풍족한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빈털털이가 되기도 하고, 아주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건강을 잃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은 항상 또 다른 마라톤 경주를 하기 위해 시작점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시인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또 다른 기나긴 마라톤 경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황폐화된 조국을 보고 솔직히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동시에 “주께서” “내 운명을 회복시키셨을 때”(표준새번역, 1)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50년의 포로생활을 끝나게 하신 주님께서 이제 조국을 옥토로 바꾸어 주실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회복을 위해 주님께 간구합니다. 4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주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사로잡힌 우리가 다시 한 번 번영하게 해주십시오”(표준새번역, 4).
중동지방은 건기와 우기가 있어서, 바짝 마른 땅에도 우기가 되면 순식간에 시내 물로 넘쳤습니다. 시인은 이미 그들을 위해 큰일을 시작하신 주님께서 “다시 한 번 번영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은 이제 눈물 나는 현실에 직면해서 눈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5-6) 지금은 한줌의 씨주머니를 가지고 뿌리러 나갑니다. 당장 먹을 양식이 부족하지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힘써 씨를 뿌립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기쁨으로 거두게 하실 하나님을 아는 까닭입니다. 건기가 우기로 바뀌듯, 마른 땅이 풍성한 물로 넘쳐나듯 여호와께서는 우리네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적게 운 사람은 그 기쁨도 적습니다. 그러나 많이 울어본 사람은 그 운만큼 기쁨도 큽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작은 씨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