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맺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고 할 때 “거하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메이나테’ 라고 하는데, ‘메이나테’ 라고 하는 것은 한번 내려진 결단을 끝까지 이루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 언제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상태임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고 할 때,
첫째는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상적으로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고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보통 마라톤 완주를 하는 데 있어서 처음 한번과 마지막 한번 두 번의 큰 고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고비를 넘어야 완주 테이프을 끊을 수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보면,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을 때 얼마나 메마르고 열매 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가를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떠나도 잘만 살던데.. 별반 차이 없던데..생생 하던데..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코드 뽑은 선풍기가 처음 얼마동안은 생생하게 몇 번 도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을 때는 버려지고 말라집니다.
버려지지 않는 삶, 마르지 않는 삶은 예수님 안에 거할 때만 가능합니다. 7절을 보면,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자연히 세상에 거하게 됩니다. 세상에 거하면 경우에 따라 순간적으로 찬란한 꽃이 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마치 벚꽃처럼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화려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에게서 칭찬 받을만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는 삶은 잠깐의 화려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궁극적인 열매를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 거하므로 궁극적인 열매를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