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예수의 생명
요한복음 15장 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0절을 보면,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아무리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라 하더라도 누가 누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부관계도 서로가 서로에게 동반자 관계는 될 수 있지만, 아내가 남편 안에 있고, 남편이 아내 안에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거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7절을 보면,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보배이며,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깨어지지 쉬운 질그릇입니다. 보배이며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인 그리스도께서 질그릇인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질그릇인 나는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10절을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합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로 인해 죽으신 것을 알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산다는 것은 죄와 상관이 없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는 상관이 없는 자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정욕과 상관이 없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교만과 상관이 없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불신과 상관이 없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질그릇 같아서, 너무나 연약해서 쉽게 정욕에 빠집니다. 교만에 빠집니다. 불신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로 부터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참으로 상관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 영혼 속에 불어넣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우리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 겉으로 비록 화려한 인생을 산다고 해도, 그 인생은 꽃병에 꽃인 꽃과 같은 인생입니다. 꽃병에 꽃인 꽃은 이미 죽은 꽃입니다. 며 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다가 이내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있기에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있기에 영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의 삶이 비록 볼품없고, 화려하지 않아도, 심지어 불쌍해 보인다 해도, 그에게는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일로 좌절합니다.
그 때 마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하여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8절을 보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합니까?
• 그리스도인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답답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과,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고 순교한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으로 부터 귀히 여김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인은 박해의 장소에서 그 누구보다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그를 공격하고, 넘어뜨리려고 해도, 그리스도인은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그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고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고 능력 많으신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십니다. 나와 같은 질그릇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려면 적군이 와서 싸워봐야 압니다. 적군에게 지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적군을 이기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과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 망했을 때, 잿더미 위에서 소생하고 부활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집안을 거꾸러뜨리고 사업을 거꾸러뜨리고 생활을 거꾸러뜨려 버립니다. 완전히 망하고 잿더미가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불사조같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망했는데 돌아보니 전보다 더 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은 말하기를 "왜 예수님이 죽으셨나요?" 묻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죽으셔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죽으면 부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는 것은 예수 죽음이 내 죽음, 예수 무덤이 내 무덤, 예수 부활이 내 부활, 즉 예수와 하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그냥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지고 다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매 순간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누리는 비밀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 죽고, 병에 대해서 죽고, 저주에 대해서 죽고, 사망과 음부에 대해서 죽었는데 이 예수님을 우리가 항상 몸에 짊어지면 예수 죽음이 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죄에 대해서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고, 나도 세상의 질병에 대해서 죽었고, 나도 저주에 대해서 죽었고, 나도 사망과 음부에 대해서 죽어서 관계가 끊어 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가면서 당하게 되는 매서운 폭풍우와 번개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