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장, 부르심과 택하심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꿀 때에는 그 씨에서 열매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씨에서 열매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렇습니다. 우선 씨에서 싹이 납니다. 그 다음 조그마한 새싹과 뿌리가 돋고 그 다음 줄기가 생깁니다. 잎이 새파랗게 생긴 다음 꽃 봉우리가 맺힙니다. 그 다음 꽃이 피고 다음에 꽃이 진 후 그 자리에서 열매가 생깁니다. 하나의 씨는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을 거친 후 열매가 생깁니다.
우리가 복음을 처음 믿게 되었다는 것은 복음의 씨가 하나 떨어진 것입니다. 이 씨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변화의 과정이 없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증거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드러납니다. 내 삶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돋고, 줄기가 생기고, 꽃봉우리가 맺히는 것을 보면서, ‘아하!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증거가 이것이구나’를 확인하게 됩니다.
어떤 이단 종파는 변화의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구원받았는가? 구원 받지 못했는가?’ 에 대해서만 관심을 둡니다. 이것은 ‘구원’ 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는, 무지(無知)입니다. 구원은 최종적인 열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 한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성장합니다. 성장하다가 다다르게 되는 곳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마가복음 4장 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은데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 보다 작은 것이지만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고 말씀하십니다. 구원, 곧 하나님나라는 이처럼 성장의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 에 대해서 생각할 때, 성장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 안에서 변화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알콜중독자는 알콜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도박중독이 있는 사람은 도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늘 정욕에 시달리는 사람은 정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5절에서 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씩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예수 믿어도 그 성질은 못 고치더라.” 그런데 성령론적으로 볼 때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고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있다면, 그 사람의 성품은 성령 안에서 변화됩니다. 성령 안에서 변화된 성품을 신성한 성품이라고 합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목회상담학을 공부할 때, 설교학 교수님께서 자기 경험담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설교에 관한 한 늘 안티세력이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사모님에게서 “그것도 설교라고 하냐?” 고 불만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만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들었다고 합니다. 그 교수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녁에 전 가족이 자가용에 타고 강변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차를 돌려서 강물에 빠져서 다 같이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설교학 교수가 설교에 대해서 사모님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분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교수님은 더 이상 사모님의 말에 매이지 않게 되었고, 사모님은 남편이 그 누구보다도 힘들게 설교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바가지를 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도 성령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성령 안에서 변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은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지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 대해서는 구속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사모님의 바가지와 그 바가지에 심각하게 영향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이런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교수님이 하나님 편에서 설교에 대해 더 고민하고, 더 갈등하며, 더 애를 쓴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고민하고, 갈등하고, 애를 쓰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자유로워져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더욱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거룩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 더욱 기도하게 되고, 그러한 기도가 있는 사람이 성령 안에서 자신을 바꾸어 나가려 합니다. 그러면서 변화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 전에는 한 사람도 품지 못하는 사람이 성령 안에서 변화되면 많은 사람을 품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열매입니다.
10절을 보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잊지 말고 그 부르심과 택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10절 하반절을 보면,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합니다.
우리의 평소 삶 속에 성령의 열매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나라가 더욱 기다려지겠지만, 그러한 열매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기다려지겠습니까? 성령의 열매가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맺고 있는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더욱 견고케 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은 넉넉히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힘들게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사람이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찬다는 말씀입니다.
그 확신을 성령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남은 인생동안 이러한 확신으로 가득 차게 된다면 얼마나 은혜이겠습니까? 우리가 오늘도 성령 안에서 변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싹이 나고 조그마한 새싹과 뿌리가 돋고, 그리고 줄기가 생기고, 꽃 봉우리가 맺히는 것을 보면서,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에 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부분은 새싹만 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뿌리가 돋아야 하고, 줄기가 생겨야 합니다. 어떤 부분은 줄기가 생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꽃봉우리가 맺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꽃봉우리가 맺힌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