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은밀하게 하라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의는 성도들이 늘 유혹을 받고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눈에 보이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칭찬은 당장 귀에 들리지만 하나님의 칭찬은 당장 귀에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보이는 사람의 칭찬을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칭찬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선행을 행할 때 사람의 칭찬이 따라 옵니다. 그런데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고 선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의 생활 중에서 구제를 비롯한 선행은 매우 중요시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행이 나중에는 종교적 행사가 되었습니다. 선행 뿐만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 정한 시간에 기도드리는 것, 금식하는 것, 모두 종교적 관습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종교적 관습으로 굳어지니 하나님 앞에 보이기 위함 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행해 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모든 선행, 종교행위에 대해서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통해 자기 상을 이미 받기도 했고, 자기 만족을 통해 자기 상을 이미 받기도 했습니다.
신앙은 종교적 관습이 아닙니다. 선조 때부터 이렇게 해 왔으니까 기계적으로 우리도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신앙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종교적 행사가 아닙니다. 신앙은 매일 매일 단독자로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의 신앙이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면적인 것입니다. 그 내면을 보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으면, 언제든지 종교적 관습 속에 신앙의 알맹이를 놓칠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5절에서 7절을 보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꾸짖습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된 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된 것이 아닙니다. 오랜 종교적 관습과 전통 속에 굳어진 것입니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고 문안 받는 것,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들이 아버지 때도 그렇게 했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세 로마카톨릭이 왜 타락했습니까? 오랜 종교적 관습과 전통 속에 굳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잘못되었음에도 고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관습과 전통 속에 안주하게 되는 원인은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심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십일조, 기도, 금식, 구제 이 모든 것들은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은밀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 2장22절을 보면,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2장16절을 보면,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행과 악행을 식별하시는 데는 불빛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이것을 식별하는 빛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 앞에서 드러나지 않은 어떤 은밀한 행위도 하나님 앞에는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행위는 심판 날에 공개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도 하나님은 나의 모든 은밀한 것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유일한 내 영혼의 증인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선행을 행해야 합니다.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죄 문제에 대해 두려움과 떨림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악행과 죄를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행위의 죄든 마음의 죄든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께 회개할 때는 마음의 숨은 죄들까지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또한 선행을 감당할 때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른 손은 축복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오른 손이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것을 왼손이 하라는 것은 드러나지 않도록 선행을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은밀하게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