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깊은 바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것은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게네사렛 호수가입니다. 아마도 이 곳에서의 설교는 예수님의 설교 중 가장 운치 있는 장소에서의 설교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한 배를 얻어 타고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어느 듯 예수님의 말씀도 끝이 났습니다. 무리들은 못내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시몬도 배를 뭍에 대고 그물을 해안가에 펼쳐 놓고는 집으로 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시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게나” 시몬 베드로의 경험에 의하면 고기는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많이 잡힙니다. 그러지 않아도 간밤에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상해 있는데 예수님마저 비웃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가 간밤에 실패했고 더 이상 그물 던질 의욕이 없음도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왜 예수님께선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실패와 한계상황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시는지,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입니다. 언제 어디에 고기가 많이 출몰하는지 물속을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는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문가지만 실패했습니다.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노련함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한계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해도 살림이 넉넉지 못하고 가계 빚만 늘어갑니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웠는데 이 자식이 부모 마음대로 자라주질 않습니다. 원치 않던 질병이 생기면 매우 심각한 한계상황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이런 한계상황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는 이런 한계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마치 예수님과 내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 기대하지 않고 마음 비우고 사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는 운명주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절망적인 한계상황을 인생의 위대한 전기를 이룰 기회로 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앞에 서신다면 뭐라 하실까요? 시몬에게 하신 것처럼 똑같이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하실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은 결코 낙망하지 말고 재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여덟 번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도전하면 아무 것도 없을 그 깊은 데로도 물고기를 몰아서 그물 속에 차떼기로 부어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와 한계상황을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꼬투리로 삼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계상황을 만나면 삶의 소망을 잃습니다. 더 이상 카드 이자를 막을 수 없다, 더 이상 남편의 폭력을 참을 수 없다, 더 이상 취업의 희망이 없다 생각되면 목숨까지 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음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한 기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에게 질문했습니다. 오늘날 당신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링컨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많은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에게 실패는 담벼락을 넘어 목표지점을 가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시몬은 실패를 겸손히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어두운 이 상황의 심연으로 빠지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이것을 요즘 정치권에서 많이 쓰는 말로 표현한다면 말씀에 올인(All-in)한다는 것입니다. 올인은 원래 도박용어로서 한 번에 모든 돈을 한 곳에 다 건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올인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물을 내리겠노라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장래는 불투명합니다. 예수님이 많은 고기를 약속해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순종했습니다. 도전했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마침내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6,7절을 보면 산란기에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물고기들이 은빛 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그물 안으로 기쁨으로 올인하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이런 장관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 가득 차게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해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20,21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주님은 오늘날도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입니다. 한계상황은 이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그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에겐 결코 극복되지 않을 한계상황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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