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절과 12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의 성격을 말합니다. 그 복음의 성격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선포합니다.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 사람에게서 받은 것, 사람에게서 배운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종교나 철학 그리고 이단이나 사이비 등이 그런 것에 속합니다.
계시는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계시는 이성을 초월합니다. 계시의 기원은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신 것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계시입니다.
바울은 계시의 의미를 설명하기 하기 위해 자기가 믿었던 유대교를 언급합니다. 특히 14절을 보면,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15절에서 무엇을 밝히고 있습니까? 바울은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를 소개합니다. 이 분이 계시의 기원이 되시는 분이시고, 부르심의 기원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논리적 체계이며, 철학적 체계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계시입니다. 계시이기에 복음은 믿음의 대상이며, 계시이기에 복음은 성령 안에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면 성경이 계시에 관한 기록임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성경이 계시에 관한 기록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의 삶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받아들입니다.
우리에게 계시로서의 복음이 없다면 자기 삶에 대해 한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이 왜 이럴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계시로서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아하! 과연 하나님 안에서 내 인생이 축복 된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내 삶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받아들일 때, 내 삶은 하루하루가 하나님 안에서 영적 의미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신학 수업을 했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으로서의 계시를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영적 의미가 되었습니다.
로마시민권은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 받는데 있어 필요하였습니다. 가말리엘 문화생으로서의 신학수업은 신약의 서신서를 집필하는데 있어 배경이 되었습니다. 한 때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사실은 그가 평생을 ‘죄인 중에 괴수’ 라고 고백하며, 항상 참회하는 심령으로 주의 역사를 감당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계시로서의 복음을 깨달았을 때 이처럼 지나간 시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영적 의미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 후 미래의 모든 시간들이 어떠했겠습니까? 미래의 모든 시간도 복음 안에서 계시로서의 삶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나의 지나간 세월에 대해 영적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슬픔과 고통이 기쁨과 축복으로 바뀌어야 하고, 미련과 후회가 소망과 기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영적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복음이 계시로서 받아들여 질 때 이렇게 됩니다.
계시로서의 복음이 받아들여 질 때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속에 더욱 기도하게 되고, 계시로서의 복음이 받아들여 질 때 우리는 삶의 모든 것들에 영적 의미를 부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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