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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by 영구한도성 2022. 7. 26.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被造物이라 以前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것이라고 할 때에 시간적 개념의 새것이 있습니다. 작년은 지나간 것이고 올해는 새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은 헌 것이고 올해는 새 것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이미 지나 갔기에, 어제 까지는 모두 헌 것이고, 오늘이 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새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 까지의 시간은 지나갔기에 이미 헌 것이 되었고, 새 것은 지금 당장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도 시간의 흐름 속에 순식간에 헌 것이 됩니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새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란 시간도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40년, 50년, 혹은 60년을 살았다고 합시다. 그 말은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남은 시간이 짧아졌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일날 생일축하를 하지만, 그 생일날 우리는 내가 이 세상 살 날이 짧아졌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됩니다.

 

새 것이 무엇인가? 할 때, 또 하나는 형식적인 새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처녀가 있다고 합시다. 처녀가 있는데 노처녀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를 불러 새색시라고 합니다. 새색시라는 것은 신분이 바뀐 새 사람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한 번 탔다 내리면 그 순간 중고차가 됩니다. 아침에 새 차를 사서 저녁에 팔아도 팔 때는 '중고차' 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새 것’ 이 없습니다. 시간도 ‘새 것’ 이 없고, 인생도 ‘새 것’ 이 없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자체에 ‘새 것’ 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1장 9절에서는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생명에 속한 것을 보십시요. 여기 좋은 시계가 있고 여기 콩 한 줌이 있다고 합시다. 이 콩과 시계를 놓고 보면 시계가 비싼 것입니다. 수 백 만원짜리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안 됩니다. 시계가 교환 가치로서는 아주 비싼 것이지만은 시계는 오늘부터 낡은 것입니다. 그러나 콩은 땅에 묻어놓으면 싹이 나고 다시 생명이 솟아오릅니다. 살아있고 성장합니다. 그래서 살아 있고 성장하는 그 순간순간은 새 것입니다.

 

사람의 인체도 세포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새 것입니다. 그런데 세포가 성장을 멈추고 노회가 진행되는 순간부터 항상 헌 것이 됩니다.

그런데 항상 ‘새 것’ 진정한 ‘새 것’ 이 있습니다. 결코 죽지 않는 것이 항상 ‘새 것’ 진정한 ‘새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지 않기 때문에 항상 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다면 결국 썩어지고 낡아지기 때문에 ‘헌 것’ 에 속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항상 ‘옛 것’ ‘낡은 것’ 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 것과 헌 것을 구별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지식이 있든, 지식이 없든,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그가 부자라 할지라도, 유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청년이라 할지라도, 그의 직업이 남이 부러워할만 할지라도 ‘헌 것’입니다.

 

새 것 됨의 조건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구속받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고 말합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상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과 같이 내가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며, 이 생명은 ‘새로운 피조물’ 로서의 생명입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항상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은 할 걸음 더 나갑니다. ‘나는 이미 어제 죽었다.’ 고 선포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고 선언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함께 오늘을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깨끗하게 장사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그런 존재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