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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태복음

마태복음5장5절-6절,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by 영구한도성 2022. 7. 30.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 溫柔한 者는 福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基業으로 받을 것임이요

 

6 義에 주리고 목마른 者는 福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6 Blessed are they which do hunger and thirst afte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온유하다는 것은 마음이 넓어 포용력이 있고 관용의 자세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시기하지 않고 양보하며 겸손히 남을 섬기고 같이 기뻐해 주는 마음입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별로 맞지 않은 성품입니다. 아무래도 요즘 시대는 사람이 독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겠습니까? 실속 차리고 내 것 잃지 않고 가능하면 남의 것 빼앗으며 뛰는 놈이 되기보단 나는 놈이 되며 그럴 힘이 없으면 나는 놈 등을 타고서라도 남 보다 위에서야 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시대 아닙니까? 요즘 시대에는 이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을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요령있게 산다고 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온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온유하지 못해 관계성을 깨고, 쓸데없이 마찰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인 혈기를 참지 못해 일을 그르칩니다. 시기하고 경쟁하고 남위에 올라서려고만 합니다.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픕니다. 상대적인 빈곤감 속에서 고통당합니다.

 

과거에는 속이 좁은 사람의 대표로 매스컴에서 Y를 꼽은 적이 있습니다. Y는 페인트칠한 달걀 세례를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Y는 너무나 화가 나서 페인트 칠해진 달걀 세례 하나 맞고 이는 유신 정권보다 더 악랄한 현 독재정권의 파렴치한 만행이라며 자기 분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를 사랑해서 주신 이 따끔한 질책을 더 잘하라는 성원으로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그의 이미지는 대번에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속이 좁고 남을 인정하지 못하면 내가 고생입니다. 세계 전쟁사에 봐도 용장이 되기 보다 지장이 되며 지장이 되기 보다 덕장이 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바로 덕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이 어떻게 복이 있는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옛 문헌에 보면 “만포고복” 이라고 해서 비 오는날 다락방에 올라가 빗소리를 들으며 포만한 배를 두드리며 자는 게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입니다. 밥을 못 먹어 허기진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고 진리가 발현되며 생명이 살아나는 그런 세상을 몹시 갈망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사람들은 그런 데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의가 밥 먹여주냐며 정직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불법과 편법이 만연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뺑소니 차에 치인 사람을 어렵사리 입원시켜주었더니만 나를 친 사람이 이 사람이라며 자기를 고소하는 바람에 입원비와 벌금을 뒤집어쓰는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좋은 일 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돈만 있으면 병역을 기피하고 법망을 빠져나가는 길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현대의 사이버 범죄는 범죄의 최첨단화를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이 시대를 살아가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옳고 그름이 기준이 되는 그런 의가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의의 기준이 되십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진리요 생명이 되신 주님만이 의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한 배고픔, 뜨거운 소원과 영적인 기대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입니다. 이렇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영혼을 배부르게, 만족케 해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영혼이 참 만족을 얻을 때 다시는 방황하지 않으며 예수님 안에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다윗은 의에 주리고 목말랐을 때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고백했습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불법이 난무해도 주님의 의를 사모하고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