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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로마서

로마서 5장, 세상의 사랑과 주님의 사랑

by 영구한도성 2022. 8. 4.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6 우리가 아직 軟弱할 때에 期約대로 그리스도께서 敬虔하지 않은 者를 爲하여 죽으셨도다
7 義人을 爲하여 죽는 者가 쉽지 않고 善人을 爲하여 勇敢히 죽는 者가 或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罪人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爲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對한 自己의 사랑을 確證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義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震怒하심에서 救援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怨讐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和睦하게 되었은즉 和睦하게 된 者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救援을 받을 것이니라
 

6 For when we were yet without strength, in due time Christ died for the ungodly.
7 For scarcely for a righteous man will one die: yet peradventure for a good man some would even dare to die.
8 But God commendeth his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yet sinners, Christ died for us.
9 Much more then, being now justified by his blood, we shall be saved from wrath through him.
10 For if, when we were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God by the death of his Son, much more, being reconciled, we shall be saved by his life.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사랑’ 이란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형님, 사랑하는 동생, 사랑하는 친구, 사랑하는 선생님,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이렇게들 부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사랑 하지만 참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좋게 하면 사랑 사랑하다가 조금만 손해가 나면 순식간에 그 사랑을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의 사랑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잘 따라 오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없어집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부부가 헤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잘 나가서 출세도 하고 돈도 있으면 사랑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하고 적막한 데 들어가면 나를 사랑하던 그 사랑들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내가 원수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죽으시고 내가 약할 때에 사랑으로 죽으셨습니다. (롬 5:5-9). 세상의 사랑은 내가 강해질 때에 나를 사랑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십니다.

 

인생에서 40-50대에서 정점을 이루다가 서서히 내리막길인 것이 보통입니다. 이후부터 경제적인 문제도 내리막길, 건강도 내리막길입니다. 등달아 부부사랑도 내리막길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의 고독의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연세가 70세가 넘은 어떤 분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밖에 나와 할 일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지금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이해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자기에게 의지할만한 것들이 많이 없어진 것에 대한 허탈감입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자신을 사랑해 주던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많이 떠나간 것에 대한 허탈감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랑은 내가 연약할수록 뚜렷하고 빛나는 사랑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내리막길이고 건강의 문제가 내리막길이고 나에게 의지할만한 구석들이 더욱 없어져 보일 때, 우리가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더 주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힘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내게서 떠나갈 때에 주님께서는 나에게 더욱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의 사랑을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 까지 하는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꺼져 가는 심지와 같아도 주님은 결코 그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보존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소망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계시는 한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랑을 변개치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랑을 변개치 않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변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변치 않으시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도 동일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많은 배신을 당합니다. 사람에게서 배신당하고 세상에게서 배신당합니다. 그래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라는 푸쉬킨의 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속이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배신하는 법도 없습니다.

 

바로 그것을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속이며 우리를 멸망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랑하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끕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짐을 지우는 것도 없습니다. 부담을 주지도 않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랑의 주님을 믿기를 원합니다. 믿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며 구원으로 이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