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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2장, 이 성전을 헐라

by 영구한도성 2022. 7. 21.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13 유대人의 逾越節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聖殿 안에서 소와 羊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羊이나 소를 다 聖殿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床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弟子들이 聖經 말씀에 主의 殿을 思慕하는 熱心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記憶하더라
18 이에 유대人들이 對答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行하니 무슨 表蹟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對答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聖殿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人들이 이르되 이 聖殿은 四十六 年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三 日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聖殿된 自己 肉體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者 가운데서 살아나신 後에야 弟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記憶하고 聖經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성전은 그 곳에서 제사를 드림으로써 사죄를 받고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사죄를 받기 위해 짐승을 죽여 그 피로 희생 제사를 드린 곳이 성전입니다.

 

성전의 구조 중 지성소라는 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것도 희생제사를 통해 속죄를 받은 후에만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처음 성전건축을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직접 말씀하셨고 성전을 건축할 전문가를 직접 주셨습니다. 이처럼 성전은 유대역사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고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성전이 무너졌을 때는 최우선 과제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성전은 착공 46년이 되었으나 아직 완공되지 않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성경을 근거로 하여 유대 백성이 받은 하나님의 명령은 성전건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성전을 무너뜨리라는 것’ 이었습니다. 극명하게 반대되는 명령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는 관점 중 구약성경을 신약성경의 그림자로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구약의 어떤 인물, 사건, 물건 등을 신약의 어떤 진리, 특히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의 그림자로 해석하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성전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참된 성전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인데, 구약의 성전은 그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는 것은 친히 성전이 되실 자기 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친히 자기 몸이 성전이 되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오늘날에도 예배에 관한 분명한 잣대를 제공합니다. 예배의 장소는 친히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모든 죄를 속죄하시되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죄를 영원토록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예배에서는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화려한 찬양과 아름다운 교회건물, 유명강사들의 설교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친히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예배가 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는 화려한 찬양보다는 성도의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의 찬양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건물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안에서 경배하는 성도들의 진솔한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유명강사의 설교를 쫓아다니는 철새와 같은 성도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신앙을 찾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전의 주인이 되시고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참 예배는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항상 이루어져야 함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성전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고 우리는 항상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세상과 벗하지 않는 결단입니다. 예배는 믿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사랑 곧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친구 삼으셨습니다. 구약의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지성소는 항상 거해야 할 장소입니다. 지성소는 주님을 친구로서 항상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세상 친구를 만나도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의 만남은 가슴 벅찬 일입니다.

 

예배란 그런 것입니다. 예배는 정형화된 형식에 재료를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어떤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배는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만남이며 교제입니다. 이 만남과 교제는 지금 이 시간도 친히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만남 속에서 위로를 얻고 기뻐합니까? 보이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입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거하고 계시는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입니까?

 

고린도전서3장1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새벽기도회를 드리는 이 시간도 예배이지만, 이 시간이 지난 후, 개인기도를 드리는 시간도 예배라는 것입니다. 또한 개인기도 시간이 끝난 후, 각자 자기의 삶의 처소에 돌아가서 도 예배는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은 모든 때와 모든 장소에서 친히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