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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21장, 나의 길

by 영구한도성 2022. 7. 22.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18 내가 眞實로 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願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願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榮光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弟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晩餐席에서 예수의 품에 依支하여 主님 主님을 파는 者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者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主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相關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兄弟들에게 나가서 그 弟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相關이냐 하신 것이러라

 


 

 

본문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것은 오직 주님과 나만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 개입될 수 없음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따르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길이 아니라 오직 나의 길입니다.

 

종말의 날, 심판대에서는 오직 주님과 나만이 남지 옆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어머니도 없습니다. 아버지도 없습니다. 또한 그 자리에는 아내도 없습니다. 형제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오직 그 자리에는 주님과 나만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고독의 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내 신앙의 길의 최종적인 책임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어머니라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식이 늘 걱정입니다. 남편이 없거나 있어도 속만 썩이는 남편이라면 자식에 대한 부담감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라는 직분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고독하지만 감당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너무 힘들다면서 자식을 버리고 도망하더라도 나는 어머니라는 자리를 가정에서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라는 자리를 지키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길이지만 그 자리를 버리는 것은 주님을 배반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자리를 감당해야 합니다. 아버지라는 자리도 참 고독한 자리입니다. 아버지라는 자리는 누구나 한 번 쯤은 무거운 자리라는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라는 자리의 무거움 때문에 저녁 늦게 홀로 밖에 나와 몇 시간 씩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라는 자리를 성직이라고 생각하고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남편이라는 자리를 주셨고, 아내라는 자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남편이라는 자리와 아내라는 자리를 성직이라고 생각하고 감당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집사로서의 직분과 권사로서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장로의 직분과 목회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성도의 직분이며 그리스도인의 직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직분은 성직입니다. 세상의 직분은 우리가 싫어하면 포기하거나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포기하거나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성직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자리를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리를 버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 직분에 대해서, 이 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사람이 이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직분을, 내가 그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감당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외로움에 해당하는 단어에 lonely가 있고 고독에 해당하는 단어에 solitude가 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내 곁에 사람이 없어서 당하는 쓸쓸함입니다. 그러나 고독이라는 것은 내 곁에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선택한 쓸쓸함입니다. 신앙의 길은 solitude 곧 고독의 길입니다. 곁에 사람이 있어도 스스로 선택한 고독의 길입니다.

 

어머니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리는 기쁨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한편 고독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롭지만 이 자리를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야 할 ’나의 길’ 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