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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가복음

마가복음 5장, 예수님의 옷을 만진 혈루증 여인

by 영구한도성 2022. 8. 6.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25 열두 해를 血漏症으로 앓아 온 한 女子가 있어
26 많은 醫師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虛費하였으되 아무 效驗이 없고 도리어 더 重하여졌던 次에
27 예수의 所聞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救援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血漏 根源이 곧 마르매 病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能力이 自己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弟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行한 女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女子가 自己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事實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救援하였으니 平安히 가라 네 病에서 놓여 健康할지어다
 

25 And a certain woman, which had an issue of blood twelve years,
26 And had suffered many things of many physicians, and had spent all that she had, and was nothing bettered, but rather grew worse,
27 When she had heard of Jesus, came in the press behind, and touched his garment.
28 For she said, If I may touch but his clothes, I shall be whole.
29 And straightway the fountain of her blood was dried up; and she felt in her body that she was healed of that plague.
30 And Jesus, immediately knowing in himself that virtue had gone out of him, turned him about in the press, and said, Who touched my clothes?
31 And his disciples said unto him, Thou seest the multitude thronging thee, and sayest thou, Who touched me?
32 And he looked round about to see her that had done this thing.
33 But the woman fearing and trembling, knowing what was done in her, came and fell down before him, and told him all the truth.
34 And he said unto her, Daughter,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go in peace, and be whole of thy plague.
 

 

마가복음 5장, 예수님의 옷을 만진 혈루증 여인

 

 

 

4복음서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중에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들이 있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 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면 심판을 받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리입니다.

 

심판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 것입니다. (계21:8) 구원은 하나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심판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심판을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고, 구원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구원을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고, ...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심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심판을 우습게 여깁니다. 구원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이 되시고,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 되심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심판의 주님, 구원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른 이름은 몰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큼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고, 그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 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중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 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죽느냐 사느냐?’ 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경쟁사회에서 무엇을 경험합니까? 죽느냐? 사느냐?를 경험합니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각 개인도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 사회에서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영혼의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몸부림칩니까?

 

한편 어떤 사람은 자기 하는 일에 만족을 하고, 인생을 잘 즐기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들, 딸 잘 키우고, 나름대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기 영혼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영혼의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내 영혼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서 열쇠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영접해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혈루증 앓는 여자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혈루증 앓는 여자의 믿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녀가 가진 병이 오히려 그녀에게 축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4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양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여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계기가 혈루증이라는 병 때문입니다.

 

‘혈루증’ 이라는 병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면, 한 달 내내 생리를 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병입니다. 그래서 이 병은 육체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녀는 이 병 때문에 율법적으로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레위기 15장 25절에서 27절을 보면, 여자의 피의 유출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그의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에 그가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그가 앉는 모든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한 때의 부정과 같으니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다 부정한 즉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쉽게 얘기하면, 피의 유출이 있는 기간은 부정하고, 피의 유출이 있는 기간에는 그 여자와 접촉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다 부정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여자가 눕거나 앉거나 만지거나 한 어떤 사물을 다른 사람이 만진다면 그 만진 사람까지도 다 부정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혈루증을 앓는 이 여자는 자기가 사는 집을 나가서 돌아다녀서도 안 되고, 더더욱 안 되는 것은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여자는 집을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어떤 물건이라도 만지게 되면, 그 물건을 부정하게 만드는 여자입니다. 이 여자가 밖에서 어떤 사람과 실수로 옷깃이라도 스친다면 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여자입니다. 한 마디로 이 여자는 걸어 다니는 악성 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종교적으로 부정한 여자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늘 집에 틀어박혀 지내야 했습니다.

 

본문의 여자는 한 두 달도 아니고, 무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으니까, 이 여자는 항상 부정한 여자로 낙인찍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대인들의 평균 수명이 약 40년이었습니다. 그녀가 열 두 해 동안 아팠다는 것은 그녀가 성인이 된 후, 삶의 절반 혹은 삶의 전부를 혈루증으로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이 여자는 참으로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병을 앓다가 여자로서의 꽃다운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혈루증을 고침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더 엄밀하게 얘기하면, 그녀는 혈루증 때문에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혈루증을 고침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 혈루증은 불행입니까? 축복입니까? ... ... 그것은 축복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녀에게 혈루증이라는 병이 없었다면 주님을 못 만났을 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혈루증이라는 몹쓸 병이 있었기에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불행한 일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불행한 그 일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그 일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본다면 이렇습니다.

 

그녀에게 혈루증이라는 병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는 하나님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혈루증이라는 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께로 달려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녀로 하여금 고침 받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녀로 하여금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을 생각할 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삶의 어려운 순간순간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고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어려운 순간순간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께로 이끌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순간순간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심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일로 지쳐 있다면 이제 새로운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있었던 일이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선하신 일들임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그녀가 고침 받은 것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면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 나병환자는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면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고 요청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며,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는 말씀으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와 그 중풍병자를 메워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중풍병자에게는 죄사함까지 선포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는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 때는 한 쪽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께 고쳐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바리새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고 고치셨습니다.

이들 병자들이 고침 받는데 있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병환자나 중풍병자나 손 마른 사람이나 모두 예수님께서 직접 보시고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자는 다른 경우에 속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보시고 고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의 능력이 감쪽같이 나가서 그 여자가 고침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나가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자의 믿음이 그 시작입니다. 그 시작에 해당하는 믿음이 28절 말씀입니다. 28절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이 그 여자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예수님의 능력이 나가서 그 여자를 고치게 됩니다.

 

항생제는 바이러스를 죽입니다. 항생제도 실체이고, 바이러스도 실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능력은 병을 고치는 영적 실체입니다. 그렇다면 그 여자의 믿음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여자의 믿음 역시 영적 실체입니다. 믿음은 결코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영적 실체입니다.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제 손에 이렇게 열쇠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열쇠의 실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으로 감추면 열쇠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열쇠라는 실체는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믿음’ 이라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영적실체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생각이 믿음이라는 영적실체를 이루어 실제적으로 고침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생각이 영적실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요, 하나님께 매달리는 손이며,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능력을 받는 마음이다.’ (우드브리지) 이것은 믿음의 단계와도 관련 있는 말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지막에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능력을 실제로 받게 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옷을 만진 여자에게 꼭 맞는 말입니다. 그녀는 주님을 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에 따라 주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주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능력을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인 의사와 이방인 의사들이 행했던 치료방식은 미신적인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대하16:12, 토비트2:10, 쿰란20:19-20) 그리고 헬라 사회에서 의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검증된 치료, 혹은 의학적 지식을 가진 치료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사실, 혈루증 앓는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도 미신적인 생각에 속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도, 당시 미신적인 치료행위를 하던 의사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의 생각이 미신적인 생각이었다 해도, 주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치료의 능력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옷에 손을 대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옷에 믿음으로 손을 대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절에 가서 부처에게 기독교적 방법으로 예배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한다고 해서 부처가 우리들의 기도를 들어주겠습니까? 엉뚱한 대상을 찾아갔기 때문에 기도를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찾아간다면 주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낫겠다는 믿음이 있다면 주님께서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급하면, 다른 데를 기웃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이 고쳐질 수만 있다면, 무당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급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급할수록 번지수를 잘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급할수록 주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낫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는, 혈루증 앓는 여자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믿음이었지만, 성령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믿음이어야 합니까?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옷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주님의 이름입니다.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낫겠다는 믿음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은 주님의 옷을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인은 주님의 옷을 만져 구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셨을 때는 어떤 형태로든 육체로 오신 주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나병환자도 직접 주님을 만났고, 중풍병자도 직접 주님을 만났고, 한 쪽 손 마른 사람도 직접 주님을 만났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자도 직접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야 구원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통해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병이 들어, 오늘 내일 하는 사람에게 결신기도를 시키지 않습니까? 결신기도는 참 간단합니다. 당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당신에게 구원을 주셨음을 선포합니다.

 

이런 결신기도를 시키는 이유는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자체는 우리를 모든 삶의 문제에서 구원하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이 풍성하게 울려 퍼지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예수님 이름 권세가 그 가정을 축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이 편만하게 울려퍼지는 교회는 행복합니다. 예수님 이름 권세가 그 교회를 축복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은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합니까? 주식얘기, 부동산얘기, 월급얘기, 여자얘기, 사업얘기를 주로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님 얘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예수님 얘기를 많이 하는 것만으로 그 가정과 그 교회는 영적인 가정, 영적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 자체에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 예수님 이름 권세가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다른 얘기보다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해 줍시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은 서로서로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합시다.

 

그러면 예수님 이름권세가 우리 가정을 변화시키고 우리 교회를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