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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가복음

마가복음 3장, 가족

by 영구한도성 2022. 8. 6.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同生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當身의 어머니와 同生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對答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同生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者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同生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行하는 者가 내 兄弟요 姉妹요 어머니이니라
 

 
31 ¶ There came then his brethren and his mother, and, standing without, sent unto him, calling him.
32 And the multitude sat about him, and they said unto him, Behold, thy mother and thy brethren without seek for thee.
33 And he answered them, saying, Who is my mother, or my brethren?
34 And he looked round about on them which sat about him, and said, Behold my mother and my brethren!
35 For whosoever shall do the will of God, the same is my brother, and my sister, and mother.
 

마가복음 3장, 가족

 

 

 

아마 나에 대해서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나의 가족일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신 후 평범하게 생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사람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의 집에서 먹고 마시는 바람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12명의 제자를 세우시면서 단체생활을 하셨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주위에는 무리들이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집에 들어가는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족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예수님의 행동이 걱정스러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부르기 위해 온 장면입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가족으로서 예수님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이 일을 빌미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가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복신앙, 즉 복을 기원하는 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기복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사람에게 매력 있는 종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사람이 매력을 느끼는 종교는 기복신앙입니다. 대다수의 종교가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이 사람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었지만, 그들이 늘 유혹 받았던 것은 기복신앙을 가진 우상이었습니다.

 

십계명에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는 제1계명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는 제2계명은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생활에서 모세가 시내산 언약을 받으러 간 사이에 아론은 백성들과 함께 금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광야생활이 끝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민족을 유혹하고 신앙적 틈만 생기면 항상 파고들었던 종교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종교의 특징이 ‘복을 준다’ 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도 마찬가지이고 무속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를 기복 신앙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복받는다.’ 라는 말을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다.’ 라는 말을 세상적인 복으로 잘못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믿고 건강하고, 자녀들 잘 되기를 누구나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러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기복신앙적인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내가 복을 받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되며,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가족관계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시작과 끝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가 신앙의 시작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가 신앙의 마지막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세입니다.

 

최고의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자체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자체가 최고의 복이지 그 이상의 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가족이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나와 가족관계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령의 불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이다.” 말씀하지 않습니다. 내 부모님이 믿으니 덩달아서 내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육신의 가족에게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희생이 요구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할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과의 타협을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전한 복은 하나님과의 가족관계로 있는 것 자체입니다. 하나님과의 가족관계로 있다는 것 자체가 생명이요 영생을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불신자가 권력을 쥐고 있고 부자이기도 합니다. 불신자들 중에 별 탈 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자고 평온하게 살아가더라도 그들이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면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가족은 안식처입니다. 쉬고 기댈 수 있는 대상이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가족으로서 우리의 안식처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쉬고 기댈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만족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서 우상을 숭배할 위험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