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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19장, 혼인잔치

by 영구한도성 2022. 8. 10.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1 And after these things I heard a great voice of much people in heaven, saying, Alleluia; Salvation, and glory, and honour, and power, unto the Lord our God:
2 For true and righteous are his judgments: for he hath judged the great whore, which did corrupt the earth with her fornication, and hath avenged the blood of his servants at her hand.
3 And again they said, Alleluia. And her smoke rose up for ever and ever.
4 And the four and twenty elders and the four beasts fell down and worshipped God that sat on the throne, saying, Amen; Alleluia.
5 And a voice came out of the throne, saying, Praise our God, all ye his servants, and ye that fear him, both small and great.
6 And I heard as it were the voice of a great multitude, and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as the voice of mighty thunderings, saying, Alleluia: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eth.
7 Let us be glad and rejoice, and give honour to him: for the marriage of the Lamb is come, and his wife hath made herself ready.
8 And to her was granted that she should be arrayed in fine linen, clean and white: for the fine linen is the righteousness of saints.
9 And he saith unto me, Write, Blessed are they which are called unto the marriage supper of the Lamb. And he saith unto me, These are the true sayings of God.
10 And I fell at his feet to worship him. And he said unto me, See thou do it not: I am thy fellowservant, and of thy brethren that have the testimony of Jesus: worship God: for 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

1 이 일 後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許多한 무리의 큰 音聲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救援과 榮光과 能力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審判은 참되고 義로운지라 淫行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淫女를 審判하사 自己 종들의 피를 그 淫女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番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煙氣가 世世토록 올라가더라
4 또 二十四 長老와 네 生物이 엎드려 寶座에 앉으신 하나님께 敬拜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寶座에서 音聲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敬畏하는 너희들아 작은 者나 큰 者나 다 우리 하나님께 讚頌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許多한 무리의 音聲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主 우리 하나님 곧 全能하신 이가 統治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榮光을 돌리세 어린 羊의 婚姻 期約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自身을 準備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細麻布 옷을 입도록 許諾하셨으니 이 細麻布 옷은 聖徒들의 옳은 行實이로다 하더라
9 天使가 내게 말하기를 記錄하라 어린 羊의 婚姻 잔치에 請함을 받은 者들은 福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敬拜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證言을 받은 네 兄弟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敬拜하라 예수의 證言은 豫言의 靈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9장, 혼인잔치

 

 

 

 

본문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는 ‘예배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 줍니다. 예배의 성격은 한 마디로 ‘잔치’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내용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응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응답 중에 핵심적인 내용은 찬송과 경배입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말씀합니다. 10절 하반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예배의 성격은 ‘잔치’입니다. 예배의 내용은 ‘찬송’ 과 ‘경배’입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경배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축제입니다. 예배는 시와 찬미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신학자 스펄전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 야 말로 사랑의 잔치이며, 사랑의 승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창세전에 택정하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다 모인 잔치입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잔치는 믿음의 경주를 한 후, 결승점에 도달한 사람들이 다 모인 잔치입니다.

 

세상에서는 경사스러운 날에 샴페인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서는 무엇으로 그 축제를 분위기를 장식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마26:29) 아마도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서는 하늘나라 포도나무에서 나는 음료로 그 축제 분위기를 장식할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 모인 성도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잔치집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다 즐겁지는 않습니다. 결혼식만 해도 그렇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결혼식 준비한다고 마음고생이 심합니다. 하객들은 단지 손님으로 올 뿐입니다.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래서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축의금만 내고 식당으로 바로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혼인잔치’ 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왜냐하면 신랑은 예수님이 되시고, 성도들은 그의 신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가서 말씀에 따르면, 신부는 신랑을 배신하지만, 신랑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신부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 나타나는 신부는 어떻습니까? 신랑이 변함이 없듯이 ‘어린 양의 혼인잔치’ 의 신부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서는 완전한 신부로 신랑이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 날에 완전한 신부로서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날에는 즐겁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배는 이처럼 ‘어린 양의 혼인잔치’ 같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손님은 없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예배는 완전한 예배는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불성실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니까 습관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직분을 맡고 있으니까 의무감에 드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배인도자는 경건치 못한 마음으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의를 내세우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강단을 하나님영광이 아니라 자기영광을 드러내는 자리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결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완전한 신부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예배를 드립니다. 완전한 예배가 아니기에 무가치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완전한 예배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 예배를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이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설교자에게, 예배인도자에게, 기도자에게, 찬양대에게, 예배를 위한 직분자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원하십니다.

 

그리고 잘못된 마음, 잘못된 의도로 드려지는 예배가 회복되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예배지만, 허물이 있는 예배지만, 부족하고, 허물이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완전한 예배를 소망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자리마저도 없다면 완전한 예배를 어디에서 소망하겠습니까?

 

저는 찬송가를 잘 못 부릅니다. 그래서 배우기도 하고, 연습도 합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더 배우고, 더 연습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우고 연습을 하지만 원래부터 찬송가를 잘 부르는 사람을 따라 잡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제가 꿈꾸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는 제가 완전한 찬송을 하리라는 사실입니다. 그 찬송은 기술적으로 잘 부르는 찬송이 아닙니다. 그 찬송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찬송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찬송가를 잘 못 부르는 이 자리에서 영과 진리로 완전한 찬송을 드리는 그 날을 사모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완전한 경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완전히 엎드리지 못합니다. 자기 의가 살아나서 고개를 쳐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는 우리가 완전한 경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 날은 우리가 주님께 아무 흠도 없이 완전히 엎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흠이 있는 이 자리에서 완전한 경배를 드리는 그 날을 사모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날을 바라보면서 허물 많은 찬송이지만 그래도 찬송을 부릅시다. 그리고 오늘도 자기 의에 대해서 회개하면서 완전히 경배드릴 그 날을 바라봅시다. 완전한 신부가 되는 그 날을 바라봅시다.

 

주되심교회 예배는 11시에 시작해서 대략 정해진 시간에 끝납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는 그 잔치가 끝난 후, 영원한 하늘 예배로 이어집니다. 그 하늘 예배 역시 영원한 잔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잔치에 참여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찬송을 부르고, 영원한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배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지금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늘 예배의 맛을 일부분이나마 맛보아야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영원하듯이 우리의 예배가 한 두 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삶 전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생명, 다시 말해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가 끝나는 동시에 진짜 예배가 시작됩니다. 진짜 예배는 축도가 끝나는 동시에 시작되는 삶으로서의 예배입니다.

 

원래 ‘교회론’ 에 따르면, 교회는 각기 자기의 삶의 처소에 있다가 시간이 되어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있다가 오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직장에 있다가 오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학교에 있다가 오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각기 삶의 처소에서 자기의 일을 하다가 오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오는 곳이 아니라 교회는 보내는 곳입니다. 원래부터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는 곳이 아니라 파송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저와 여러분을 세상으로 파송합니다. 교회는 가정으로 파송합니다. 교회는 직장으로 파송합니다. 교회는 학교로 파송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각기 삶의 처소로 우리를 파송합니다. 파송하여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하는 장소가 교회입니다.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의 자취를 ‘원주’ 라고 합니다. 쉬운 말로 ‘원둘레’ 라고 합니다. 가운데에 있는 한 점이 ‘교회’입니다. 그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의 자취들, 원둘레를 형성하는 모든 점의 자취들은 우리의 모든 삶의 처소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중심에 있습니다.

 

그것이 창세전부터 있었던 택함 받은 자들, 곧 교회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다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완전한 찬송, 완전한 경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교회는 단 하나 뿐인 교회입니다. 창세전부터 세상종말의 날 까지 단 하나 뿐인 교회입니다. 이것을 ‘보편 교회’ 혹은 ‘보편적 교회’ 라고 합니다. 이 교회는 완전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우리가 자기 뜻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과 자기 지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흠이 없는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흠이 없는 교회, 완전한 교회는 창세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편적 교회’ ‘완전한 교회’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주님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이 그 보편적 교회, 창세전부터 있었던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 수가 많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배당이 아름답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최고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보편적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뿐입니다.

 

본문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열리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음을 보여줍니까?

 

첫째는, 의로운 심판에 대한 찬양과 경배가 있습니다. 2절을 보면,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말씀합니다.

 

‘참되다’ 는 말은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한 치의 오차나 편견도 없이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했다’ 는 것은 단순한 불신앙적 행위 뿐 아니라, 비신앙적 행위 전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불신앙적 행위는 우상숭배, 음란, 사치, 향락, 그 외에 모든 육체의 소욕을 좇는 악행들, 분쟁, 시기, 질투, 교만 등입니다. 비신앙적 행위는 복음과 유사하지만 비복음적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리를 소홀히 하는 신앙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를 말하지만 십자가를 변질시키는 종교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는 종교가 여기에 속합니다. 모든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비신앙적 행위를 유발시키는 종교입니다.

 

‘큰 음녀’ 는 17장과 18장에 언급된 ‘큰 성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큰 성 바벨론은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사치와 음행을 일삼았습니다. 주변 국가들에 악한 세속 문화를 전파했습니다. 그 행실이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음녀를 방불케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불신앙적 행위에 대해서, 비신앙적 행위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두 가지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땅에서의 심판입니다. 또 하나는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예를 들어, 앗수르에 대한 심판과 바벨론에 대한 심판은 이 땅에서의 심판입니다. 마귀 사탄에 대한 심판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이 땅에서의 심판은 받지 않았다고 해도 최종적인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최종적인 심판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최종적인 심판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됩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까?

 

기도를 한다고 합시다. 나의 기도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하는 기도는 사람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기도를 들으실 하나님 한 분 만을 생각하며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나의 삶의 상황에 대해서 용납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고 합시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믿고 받아들인다면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최종적인 심판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 가 열리기 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찬양과 경배가 있습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6절 하반절을 보면,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말씀합니다.

 

이 땅에서는 작은 자가 있고, 큰 자가 있습니다. 지배가가 있고 피지배자가 있습니다. 가진 자가 있고, 가지지 못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모두 하나님을 찬송하는 똑 같은 성도들의 신분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도들은 누구입니까?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드디어 열리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7절을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어떤 특별한 옷을 입습니까? 8절을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말씀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잔치’ 에 참예할 성도들이 갖추어 입어야 할 예복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입니다. 이 옷은 곧 성도의 의롭고 성결한 행실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8절을 보면,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다.’ 고 말씀합니다.

허락하셨다는 것은 은혜로 그 옷을 입도록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에게는 그 옷을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에게 그 옷을 입을 자격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그 옷을 입을 자격을 부여하신 이유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결코 의롭고 성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속제물이 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의롭다’ 하십니다. ‘성결하다’ 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결하심을 그에게 입혀 주십니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심판 받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불신앙적 행위와 비신앙적 행위 때문에 심판 받습니다. 그리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면 심판 받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어린 양 혼인 잔치’ 에 참예합니까? 그것은 단 하나입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어린 양의 대속의 피로 씻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부들입니다. 완전한 신부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9절말씀처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미켈란젤로’는 ‘하늘로부터 태어난 영혼은 천국지향적이어야 하며, 세상 밖으로 높이 솟아올라야 한다.’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