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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2장, 그리스도의 고난

by 영구한도성 2022. 7. 30.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18 使喚들아 凡事에 두려워함으로 主人들에게 順從하되 善하고 寬容하는 者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者들에게도 그리하라
19 不當하게 苦難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罪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稱讚이 있으리요 그러나 善을 行함으로 苦難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爲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爲하여 苦難을 받으사 너희에게 本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罪를 犯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辱을 當하시되 맞대어 辱하지 아니하시고 苦難을 當하시되 威脅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公義로 審判하시는 이에게 付託하시며
24 親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罪를 擔當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罪에 對하여 죽고 義에 對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前에는 羊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靈魂의 牧者와 監督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본문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를 따르는 자, 곧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고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18절을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19절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라는 말씀이 연결됩니다.

 

사람들이 받는 고난 중에 윗사람으로부터 받는 고난이 크기 때문입니다. 윗사람으로부터 받는 고난이 큰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성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 고생이 큽니다. 대등한 관계성이거나 자기 보다 아랫 사람인 경우는 마음 고생이 작습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 실력행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윗사람인 경우는 실력행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나 보다 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도 참아야 하고, 처자식 때문에 억지로 참는 것도 많습니다. 대등한 관계성이 아닌 경우는 이처럼 대화에 있어서도 대등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마음고생을 하게 됩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것에 대해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어떻게 말씀합니까?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 고 말씀합니다.

 

참는 것도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억누르면서 억지로 참는 경우가 있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경우가 있습니다. 양쪽 다 참는 경우이지만 결과는 다릅니다. 억지로 참으면 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약이 되고 영적 유익이 됩니다.

 

주인에게 혹은 윗사람에 대해 참아야 할 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참는 것이 주인이나 윗사람과의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 인간관계에서 참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해 참는 것이 덕스러운 것이 될 때가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해 참는 것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것이 은혜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힘이 없어서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힘이 있지만 참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그 날 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26:5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지신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지 않으시고, 그 날 밤 자기를 잡으러 온 자들을 모두 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26:54)

 

예수님께서는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해 그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기 위해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의 계획에 나의 인생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내어 맡기는 가운데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애매한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참되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고난도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죄와 무관한 고난이 있고, 나의 죄 때문에 발생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말씀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죄가 있어 매를 맞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매를 맞는 것입니다. 매를 맞을 때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에 대해 참을 때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면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면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세상에서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할 말 다하고, 혈기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변호할 수 있는 말을 참고, 그리스도의 영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고, 자기를 치고 심지어 침을 뱉는 자들에게 까지 참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자기 옷을 제비 뽑던 군병들까지도, 백성들의 조롱까지도 다 참으셨습니다. 단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분이시기에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십니다. 부당하게 고난 받아도, 애매하게 고난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는 사람들은 그 고난이 자기에게 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움이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 때문에 흘린 눈물이 많다면 주님께서 닦아 줄 눈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면서 주님 때문에 흘린 눈물이 없다면 주님께서 닦아 줄 눈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흘린 눈물이, 그리고 앞으로 흘릴 눈물이 많기를 바랍니다.

 

25절은 믿는 자들의 실존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말씀합니다. ‘너희 영혼의 목자’ 라는 것은 우리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영혼이 쉴 수 있는 곳...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감독자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감독자가 되시기에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부당하게 고난 받는다면 그렇게 부당하게 고난 받는 것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내가 불필요한 혈기를 부린다면, 내가 그렇게 혈기 부리는 것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오기 전 까지는 우리 인생의 감독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감독되신 이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주님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면 언제까지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리다가 인생을 망쳐 버립니다. 그러나 내 인생을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께서 나를 가장 성공적인 인생으로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성공적인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장 아름다운 인생, 곧 하나님의 작품이 되는 인생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가운데 겪는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조각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각칼을 내 인생에 드리울 때 그 칼을 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내 인생을 잘못되게 하는 칼이 아니라, 내 인생을 가장 잘 되게 하는 은혜의 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