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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3장, 선을 위한 고난

by 영구한도성 2022. 7. 30.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8 Finally, be ye all of one mind, having compassion one of another, love as brethren, be pitiful, be courteous:
9 Not rendering evil for evil, or railing for railing: but contrariwise blessing; knowing that ye are thereunto called, that ye should inherit a blessing.
10 For he that will love life, and see good days, let him refrain his tongue from evil, and his lips that they speak no guile:
11 Let him eschew evil, and do good; let him seek peace, and ensue it.
12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ver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unto their prayers: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em that do evil.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同情하며 兄弟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謙遜하며
9 惡을 惡으로, 辱을 辱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福을 빌라 이를 爲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福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生命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願하는 者는 혀를 禁하여 惡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惡에서 떠나 善을 行하고 和平을 求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主의 눈은 義人을 向하시고 그의 귀는 義人의 懇求에 기울이시되 主의 얼굴은 惡行하는 者들을 對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8절과 9절 상반절을 보면,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말씀합니다. 즉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빌어야 하는 이유가 너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희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복을 빌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는 버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삶의 방식이 세상사람들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사람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를 위해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 복을 빌면 어떻게 됩니까? 9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복이 이어지게 됩니다.

 

만일 그를 위해 복을 빌어주고 그가 변화되면 그것은 나에게도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나의 관계성이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아주는 관계성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를 위해 복을 빌어주었지만 그가 변화되지 않아도 그 기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를 위해 빌어 준 복이 나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된 삶이 자신에게 뿐 아니라 후손에게 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후손에게 주는 영적 유산이 있다면 복을 빌어주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절은 복을 빌어주는 사람의 영적 품성입니다. 그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영생이고, 좋은 날은 구원의 날입니다. 영생을 사랑하고 구원의 날을 보기를 원하는 자는 다른 이를 위해 복을 빌어 줍니다. 그래서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칩니다. 그리고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합니다.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이 나오고 악한 행동이 나오기도 하지만, 악한 말에서 악한 마음이 나오고 악한 행동이 나오기도 합니다. 악한 말과 악한 마음은 상당히 상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성인군자가 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악한 말을 하게 되는 상황들이 빈번히 발생합니다. 악한 말을 하면서 그 마음에 악한 마음이 형성됩니다. 우리는 여러 삶의 상황들 속에서 악한 말을 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혀를 금해야 합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면서, 그 말과 행동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주님 제가 말을 험하게 하고, 행동이 거칠어도, 제 마음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는 기도가 통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심령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말도 보시고, 그 행동도 보십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해치는 것은 그 사람의 심령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그 사람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심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말과 행동이 모두 따라 주어야 합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신다고 할 때 주의 눈은 긍휼의 눈입니다.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라고 할 때 그의 귀는 의인의 기도에 열려있는 주님의 귀입니다. 그런데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신다고 할 때 주의 얼굴은 분노의 얼굴이며, 그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혀를 금하고, 악행을 그칠 때 주님께서 내 편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