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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마가복음

마가복음 1장, 예수님의 권세

by 영구한도성 2022. 8. 5.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21 And they went into Capernaum; and straightway on the sabbath day he entered into the synagogue, and taught.
22 And they were astonished at his doctrine: for he taught them as one that had authority, and not as the scribes.
23 And there was in their synagogue a man with an unclean spirit; and he cried out,
24 Saying, Let us alone; what have we to do with thee, thou Jesus of Nazareth? art thou come to destroy us? I know thee who thou art, the Holy One of God.
25 And Jesus rebuked him, saying, Hold thy peace, and come out of him.
26 And when the unclean spirit had torn him, and cried with a loud voice, he came out of him.
27 And they were all amazed, insomuch that they questioned among themselves, saying, What thing is this? what new doctrine is this? for with authority commandeth he even the unclean spirits, and they do obey him.
28 And immediately his fame spread abroad throughout all the region round about Galilee.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安息日에 會堂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敎訓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權威 있는 者와 같고 書記官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會堂에 더러운 鬼神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當身과 무슨 相關이 있나이까 우리를 滅하러 왔나이까 나는 當身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者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潛潛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鬼神이 그 사람에게 痙攣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權威 있는 새 敎訓이로다 더러운 鬼神들에게 命한즉 順從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所聞이 곧 온 갈릴리 四方에 퍼지더라
 

마가복음 1장, 예수님의 권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재판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염려하고 두려워합니다. 판사의 말 한마디가 피고인의 거취문제를 좌우합니다. 무죄판결이 날 수 있고, 감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징역 1년을 살지? 징역 10년을 살지? 이러한 결정이 판사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습니다. 판사의 말 자체가 권세에 속합니다. 이 권세는 제도적, 행정적 권세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여러 가지 권세 속에서 살아갑니다. 회사에서 기업주는 직원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직원은 그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업의 문제와 관련하여 기업주에게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권세를 인정하기 싫으면 그 회사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 권위는 경제적 권세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권세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권세를 인정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권세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이 권세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권세들은 도덕적 권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도적 권세, 행정적 권세, 경제적 권세, 도덕적 권세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에게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우리는 삶의 도처에서 이러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귀신의 역사방법은 어떤 틈을 타서 직접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들어가지 못할 때는 사람의 약한 면이나 어떤 상처를 이용해 간접 역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귀신은 자기의 모습을 감춘다는 사실입니다. 귀신은 자기의 모습을 감추면서 다양하게 역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귀신의 역사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부싸움이 일어나서 홧김에 가스관을 터뜨려 한 순간에 가정을 파괴하는 행동, 사소한 시비가 커져 살인사건으로 번지는 경우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의 책임이 본인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귀신에게 조종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귀신보다 강하다면 귀신에게 조종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귀신보다 약하기 때문에 조종당합니다.

 

귀신은 한 마디로 어둠의 권세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것은 상당한 부분 악령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귀신이 가지고 있는 그 힘을 무너뜨리는 권세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과 예수님의 만남이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소리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지금 소리치고 있는 자는 그 사람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압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2가지로 요약하여 말합니다. 하나는 자기들을 멸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과연 신자들이 귀신이 고백하고 있는 만큼 예수님을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본문은 비록 귀신의 고백이지만, 신자들도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귀신을 멸하시는 영적 권세자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 함은 바로 예수님의 권세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는 권세자이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권세자이시며, 바람과 바다를 순종케 하는 권세자이십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세자이십니다.

 

이 세상의 제도적 권세, 행정적 권세는 때가 되면 사라지는 권세입니다. 그리고 제도가 바뀌고 행정이 바뀌면 사라지는 권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권세는 그 본질이 주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입니다. 주님의 권세는 한마디로 영적권세라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는 것도 영적권세이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영적권세이며, 바람과 바다를 순종케 하는 것도 영적권세입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영적권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모든 것의 권세자이시니’ 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이 밝아지면 행정적 권세, 제도적 권세만 보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밝아지면 영적권세가 보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육신이 병들고, 그 영혼이 병듭니다. 그러나 주님을 두려워하면 그 육체와 영혼이 강건해 집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람을 살리는 권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25절과 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꾸짖어 말씀하시자,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올 때 곱게 나오지 않습니다. 진통이 있습니다. 경련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진통이 있었지만 결국 고침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둠의 세력도 쉽게 나가지는 않습니다. 진통이 있고, 경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는 한, 결국 진통과 경련이 있을지언정 고침받게 됩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까지는 무척 쾌활한 성격이었습니다. 제 혈액형이 O형인데, 저는 전형적인 O형 성격이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학급회의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즐기고 노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춘기의 진통도 있었지만 가정배경 속에서 아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학을 하고 사역자로서의 삶을 걸어가면서 다시 치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시려면 저를 바꾸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진통이 있습니다. 진통이 있지만 결국 쓰실 만한 종으로 바꾸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누구나 다 어둠의 권세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불행한 마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진통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을 치료하십니다.

 

단지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영적권세자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것의 권세자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삶의 환경이 풍랑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 받습니까? 그렇다면 죽은 자를 살리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나도 알지 못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귀신을 꾸짖으시는 예수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이러한 권세자라는 것을 알고 겁에 질려 도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이러한 권세자라는 것을 알고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권세는 우리 영혼을 짓누르는 권세가 아니라 우리 영혼을 살리는 권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권세는 우리를 짓누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세는 우리를 살립니다.